다시 만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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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14학번으로 대학을 들어간 이후 들어올 일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햇수로 5년 만에 제가 재수했던 대치동 뒷골목에 가보았습니다.
이제는 서울 사람이 다 되었는지 그렇게 높아보이던 무역센터도 그저 그런 풍경으로 녹아들더군요.
서울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포스코센터나 무역센터가 너무 신기해 계속 쳐다보고, 그런 날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 골목을 다시 걷다보니 문득 재수 시절이 생각나 마음만 아리송해지네요.
그 시절을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 하는 생각에 인생이란 참으로 아리송하다-
다시 한번 생각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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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만 깊어지는 저녁입니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공부란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해보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몰론 수능 공부는 아니고, 독하게 회계사 공부할까- 열심히 생각 중입니다.
재수 고민할 때도 크리스마스날 몸살날 정도로 머리가 아팠는데,
다시 한번 그런 결심을 해야할 날이 오다니, 인생이란 참으로 아리송하다-
다시 한번 생각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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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후 동아리를 찾아가니 18학번 새내기들이 있더라고요.
나이를 물어보니 99년생?
무서워서 동기한테 빨리 술이나 먹으러 가자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아- 같이 숨쉬기가 곤란해요,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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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하는 양반인데 그 나이 먹고 다시 오르비에 왔냐-, 피고인은 답하라- (그리고 취업 준비나 하라-)
그냥 잘 모르겠습니다.
머리가 아파 쏘다니다 재수 시절 뒷골목을 찾았고,
재수 시절 뒷골목을 거닐다보니,
재수 시절 썼던 다이어리가 생각나고,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오르비가 생각나고,
오르비에 들어와보니 재수 시절 썼던 글이 생각나고,
그 글을 다시 읽다보니 13년도에 게시되었다는 사실에 소스라끼쳐 옥상에 올라가 내 지난 5년을 돌려줘-,
라고 외칠 자신은 없지만 대학 입학 후 지금껏 잘 살아왔는지 반성하는 마음도 들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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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 봄까지 2년간을 돌이켜보건대, 실익 있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노라고 단언해두련다. 이성과의 건전한 교제, 학업 정진, 육체 단련 등 사회에 유익한 인재가 되기 위한 포석은 죄다 빼 버리고 이성으로부터의 고립, 학업 방기, 육체의 쇠약화 등 깔지 않아도 되는 포석만 족족 골라 깔아댄 것은 어인 까닭인가. 책임자를 추긍할 필요가 있다. 책임자는 어디 있나. |
제가 참 좋아하는 소설의 도입 일부입니다.
재수 시절 고시원 방안에서 낄낄 대며 읽었던 소설인데 제가 이 주인공 처지가 될 줄은 몰랐네요.
제겐 여러가지로 사연 많은 책입니다.
놓쳐버린 첫사랑에게 마지막 선물해주, 흠흠- (K야 잘 지내니-)
이 책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학점 말아먹으면서 문학동아리에 2년 동안 쏘다니기 시작했고,
거기서 첫ㅅ, (K야 잘 지내니-)
재미 붙어서 멀쩡한 학과 버리고 국문과로 전과하기도 했고,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덕분에 제 취업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고,
이게 다 저 책 한 권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무서운 일이지요.
5년 전 처음 만난 문장인데 저 문장이 지금 다시 새롭게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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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 와서야 깨닫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에는 세상이 학교와 학벌로만 보였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오르비언 분들도 이와 같은 안경을 끼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까지 이 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홀라당 벗겨져 대중 속에 던져지는 느낌이 듭니다.
가만보면 대학 입시 외에 영역에서 성취한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이 안경이 두꺼워지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라 이제 와서야 여러 방면으로 다양한 성취를 하고 싶은데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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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현실이 정말 차다는 것!
재수생 시절에는 연고대, 서성한 나와서 공무원 한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취업이 안되서 빠지는 경우도 많지만 공무원만큼 노동 환경이 좋은 직장이 한국엔 잘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이야 다들 대기업 대기업 하지만 들어보면 별로 사람 사는 것 같지는 않네요.
어렵게 들어가서 공무원이나 다른 쪽으로 유턴하는 분도 많고 말이죠.
전 이걸 뒤늦게 깨달아서 현재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노동 환경이 꼭 좀 개선되었으면 좋겠네요.
취업만 놓고 봐서도 일본처럼 인구절벽 후에는 좀 괜찮아 진다고들 하는데 적어도 현재로서는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저도 어떻게 이 정도까지 경제가 안 좋을 수 있을까 싶어 경제학, 사회학 여러가지 읽어봤습니다만.
아무리 읽어봐도 현재 우리 세대, 우리 경제 상태가 노답이라는 것밖에는 답을 찾지 못하겠어요.
짜증나서 군대나 가버렸습니다.
저도 파릇파릇한 청운의 꿈을 품고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언제나 저를 골치 아프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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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어른들은 항상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시는데 어린 저로서는 아직 잘 와닿지 않습니다.
가끔은 돈이 최고인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이죠.
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어느 정도까지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돌이켜보면 제 스스로 항상 오만했던 것 같고 이제부터는 좀 내려갈 연습을 하고 싶네요.
오만했던 저 스스로 반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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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대학 2년, 군대 2년 동안 한 것이라고는 책 읽고, 글 쓰고, 생각하고, 여행하고 했던 시간뿐이라 요즘 걱정입니다.
뭐든 열심히 해서 별 후회는 없는데 남들처럼 학점 따고 스펙 쌓고 무엇이든 악착같이 했어야 하나 싶기도 하네요.
지금은 복학 시기도 어정쩡해서 휴학한 상태이고 앞으로 제 미래를 생각할 시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군대가기 전에는 현실의 높은 벽을 깨닫고 자퇴하고 CPA나 봐야겠다- 했는데 용기가 쉬이 나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는 기자가 되야지- 했는데 제 여리여리한 성격에 그걸 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내 성격으로 기자는 절대 못하고, 다시 역시 돈이 최고인가, CPA인가- 합니다.
그래도 책과 글이 좋아서 이쪽 방면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기는 한대 도통 답이 나오질 않네요.
결국 다 밥벌이인데 모든 게 한낮 파랑새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모든 생각을 다 잊고 단순히 살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대충 대충 살자-
그 대충도 요즘은 어렵다고 하지만 이런 태도로 한 번 뿐인 인생을 살아가자니 화가 나기도 하고,
도통 모르겠습니다.
저는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저는 잘 살아왔던 걸까요?
이런 푸념을 저보다 나이 어린 수험생들에게 하는 것도 참 이상하지만 그래도 들어보고 싶네요.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아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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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모든 결과를 책임져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요즘 같은 세상에는요.
저만해도 문화적으로 386 세대의 그것에 많이 영향을 받아오며 자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학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는 것처럼 공부했거든요.
전형적인 386 세대의 성공.
가난, 주경야독, 명문대, 시위, 민주화, 출세, 그리고 돈.
저도 그런 길을 따라가야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들이 옳지 않은 것을 행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지금에 와서는 우리 세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생각합니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좋은 대학 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때와는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그것이 결과에 끼치는 영향이 참으로 작아졌다고나 할까요?
그들의 성공과 다른 새로운 성격의 성공을 개척해나가야 하지 않나 싶어요.
또 사회가 그런 새로운 성공도 성공이라 불러주기를 원하고 말이죠.
그런 것을 새롭게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세대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와는 또 다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무어라 불러야 할까요, 우리 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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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격이 대범하지 못합니다.
사람을 살갑게 대하는 것도 참 어렵고 낮도 많이 가려요.
또 참으로 느린 사고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게 싫지 않은데 요즘 이 성격으로 한국 사회에서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원래 희망하던 기자직도 그런 태도로 기자는 힘들다, 기자는 약육강식이야- 라는 말 듣고 마음에서 멀어진 상태죠.
체 게바라나 잡스의 삶도 멋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저는 하루키나 루시드 폴의 삶도 멋있다고 자주 생각합니다.
큰 야망은 없어도 누구 눈치 안보고 여행 다니면서 글 쓰고 기타치고, 멋있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게 어디 마음 먹은대로 되나요.
무엇이든 한국에서 1인분 한다는 것이 참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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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운명의 시계탑 앞에서 비밀 기관 '복묘반점'을 선택한 데 대한 후회의 염은 떨칠 수 없다. 만약 그때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나는 다른 학창생활을 보내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 무한히 계속되는 다다미 넉 장 반 세계를 80일간 걸어 본 인상으로 추측하건데, 나는 어느 길을 선택했어도 별 차이없는 2년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무서운 상상이기는 하나, 어느 길을 선택했어도 오즈를 만나지 않았을까. 오즈의 말대로 우리는 운명의 검은 실로 맺어져 있다는 이야기다. (..) "왜 그렇게 내고 싶어 하는 겁니까?" 나는 씩 웃었다. "내 나름의 사랑이다." "그렇게 더러운 것, 필요 없습니다." 그는 대답했다. |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저도 이런 느낌으로 과거를 체념하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무언가 시작해보려 하는데 답답한 일만 벌어지고 답답하고 답답하기만 하네요.
오랜만에 오르비 와보는데 5년 동안 바뀐 것은 없는 것 같네요.
여전히 수험생들은 힘들기만 하고 말이죠.
감히 말하자면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모든 결과를 책임져주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했던 노력이 헛되이 돌아가지는 않을 터이니 그저 일단은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뿐이네요.
여러분보다 반 발자국 앞서간 선배들은 이런 고민을 하고 산답니다.
별 생각 없이 사는 녀석들도 많습니다만..
혼자 술 먹고 주저리 되는 시간이었지만 즐거웠고 저는 다시 한번 고민해보러 나갑니다.
안녕히들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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