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망치 [429603] · MS 2012 · 쪽지

2013-08-06 23:58:53
조회수 823

충치.

게시글 주소: https://test.orbi.kr/0003774758

어제 새벽 2시 30분까지 런닝셔츠와 짧은 반바지 차림으로 수1 정석 행렬부분을 풀며 쉽다며 즐겼던 한 아이가 6시에 깬다고 시계를 맞춰놓은 채 부모님의 만류로 2시간 30분을 더 자고 깨어나 8시 30분.

 

'어제 공부시간 4시간'

 

늘 그랬듯이 그 아이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기 위해 아침부터 다시 수학문제집을 편다.

밥먹을 때까지 총 2시간 45분 공부.

 

'괜찮다, 오늘 뭔가 될 것 같다'

 

밥을 먹고 난 후 조금 마음의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핑계로 아이는 자신의 핸드폰이지만 동시에 그의 어머니의 핸드폰으로 전락해버린 iPhone을 들고 조용히 몰래 방으로 들어가 이어폰을 꽂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

 

'이 노래는 뭐지'

 

158곡 중에서 랜덤으로 나오는 무작위선택.

아마 이 멜로디는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낯선 느낌의.

 

'째즈'

 

'looking up'

 

'누구 노래더라'

 

최대한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아이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미셸 페트루치아니'

 

아마 21세기 들어서기 전에 죽은걸로 기억한다.

왜소증에 걸린, 레옹도뇌르 훈장까지 받은 프랑스인.

 

탕탕 튀는 피아노 선율에 맞춰 몸을 튕기는 순간 문을 열고 아이의 어머니는 들어온다

 

'깜짝이야'

 

 

 

최근들어 아이는 목동에 있는 한 학원에 다니고 있다.

주말에 7:30 ~ 10:00까지 진행되는 수업이다. 한달에 360000원. 하루에 45000짜리인 수업이다.

전혀 지루하진 않다. 왜냐하면 숙제가 많기 때문이다. 숙제 하기도 벅차다.

 

 

아이는 2012년 마지막 날에 절친이 주었던 0.9mm 샤프를 손에 든채

너무 쉽지만 너무 어려운 원의 방정식을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난이도 상'

 

도대체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야하지?

아이의 신경세포의 시냅스가 활성화된다.

 

 

20분 뒤, 그러므로라는 뜻의 기호, 점 3개를 찍는 아이의 얼굴에는 환희와 기쁨에 차있다.

 

'수학(하)는 너무 귀찮다'

 

단순계산노동의 시달리고 있다.

나는 이런 계산을 위해서 숨을 쉬고 있는게 아니다.

 

수1정석을 편다. 그리고

 

'3장, 역행렬'

 

정확히 8개월 전만 해도 지금의 나는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8개월 전의 나는 이미 수1을 마스터 했다.

아니 극한은 배우지 않았으니 마스터는 아니었지만.

 

그러나 지금의 나는 8개월의 자아가 현실을 망각하고 싶을 정도의 한심함의 극치이다.

그러한 표본이다.

 

 

정말 즐겁다. 오로지 문제 푸는데에만 급급하다.

이 2가지의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 나는 책상을 벅차고 나왔다.

 

'밥 먹자, 나와'

 

점심식사타이밍이다.

 

 

 

치과에 갔다.

이빨에 평소에 문제가 많았다.

나는 종합병원이다.

 

'아토피성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염증성 신체, 치아에 있는 희귀병, 3.0diopter만 더 나빠지면 신검 4급이 뜨게될 정도의 시력, 부러진 안경'

 

심지어 어머니께서는 EBS 명의에 나오는  갑상선기능항진증의 증세가 나와 같다고.

내일 보건소에 가서 호르몬 검사를 하자고 한다.

나 왜이래 내 몸에 관대한 것일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

 

 

 

치과의사의 손이 내  눈을 누른다. 동시에 치과의사의 손이 내  충치를 레진으로 씌우고 있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허무하다.

고삐풀린 말이 되었다. 깎아먹는 충치가 되었다.

 

 

 

7살짜리 동생을 위해 안방에 만들어 놓은 볼풀이 야구에 대해서 속삭인지도 벌써 2시간.

나는 2시간째 지금 볼풀 안으로 공을 던지고 있다.

 

공부를 해야 한다.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한 강박관념. 내 눈을 누르고 있다.

 

 

 

10:00 그는 굿닥터라는 드라마를 가족과 함께 시청한다.

부모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아니, 알면서도 아무말 하지 않으신다.

 

파탄이다. 가정형편은 이제 거의 어려워 지고 있다.

스트레스다. 모든것이 스트레스다. 어머니께선 병도 앓고 계시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그래서 언제 갈줄 모르는... 그런 병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께선 언제부턴가 그러한 증세를 보이지 않기 시작하셨다.

아니, 나는 생각한다. 우리에게만 보이지 않기 시작하신 것이다.

 

굿닥터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나도 의사가 되고 싶다.'

 

 

 

 

 

 

충치가 아물어 가고 있다.


 

0 XDK (+0)

  1.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