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하는거지. [459847] · 쪽지

2014-11-06 01:48:23
조회수 5,270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면 안되는 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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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하면 안되는 부류다.

흔히들 사람들은 집단행동을 하면 양심의 가책을 덜 느낀다고 한다.
애초에 그런 가책을 느낄 이유가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 행동의 절제는 무언의 양심이나 자존감,
자기인생을 망치고싶지않은 바램같은 심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때부터 해왔던 생각 하나, 건물 바깥에 주인의 눈이 전혀 닿지않는곳까지도 무방비로 진열된 상품을 보면서 '이거 도둑질하면 들키지도 않겠네, 근데 도둑질이 흔하지도 않은걸 보면 많은부분을 양심이나 범죄로부터 자유롭고싶은 보호의식에 의존하는구나', 내 경우에도 그랬다.

독서실 다녀본지 얼마안됬을때 공부하다 독서실에서 나오면 안될거같은, 우리가 처음 PC방에갈때 저런델 가면 안된다, 땡땡이 쳐보기전에 그러면 안된다는, 이런 보편적인 것들 말고도
화류계여성이 처음 일을 시작할때 맞았을 도덕적 갈등, 도둑이 처음에 범행하기전에 맞았을 갈등 (아마, 바늘도둑인 아이들일 것이다.) 

그런 양심적,어떻게 보면 스노브적인 경계들이 하나씩 무너져가다가
공공의 관점에서 봤을때 넘어선 안되는 '법의 한계'와 맞붙고만다.

범법자와 일반인은 그 한계를 넘어버린것과 그 한계앞에서 한번더 생각하거나 
두려워하며 멈춘 차이가 아닐까, 
그런데 인터넷은 그런 내면의 양심비슷한 한계를 너무 쉽게 허물어버린다.

인터넷은 자신과 비슷한, 혹은 더 못하다고 여겨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기자신은 이렇게 못났지만, 인정은 할게, 
나보다 더 못난놈들도 많은데 나는 그래도 알기라도 아는구나, 

다른놈들도 이런수준까지 저급해지는데 이정도는 그냥 장난이지 라며
표현수준, 행동양식의 양심적인 경계를 부수며 왠지모를 안도감을 선사한다. 

몇몇은 자신이 이렇게 못났지만 나는 받아들인다는 일종의 중2병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 한계와 자존감[그 양심의 한계같은것을 그나마 받쳐주는]을 무너뜨린다.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것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마이너스 자부심' ,나는 이렇게 부르겠다. 이것과 전혀 다를바없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지루할까봐,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되거나, 내가 못난사람처럼 보이는걸 경계해 현실에서 하지못하는 말들, 사람들 몰래 아쉬움과 제각각의 상처를 나름대로 풀어놓는 곳이 된다.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만들어가며 시간을 낭비하며
관심을 챙기려 노력하고 부족한 자존감을 글로 채운다. 내가 그렇다.

수험생 사이트에서도 이런 모습을 적지 않게 볼수 있다.

겉으로는 존중하는척 하나 장수생을 무시하면서, 
랜선연애를 욕하면서, 어그로끄는 사람들 글에 레이드를 하면서 
(이런사람들 옹호하는거 아니니까 오해하지말자) 

선민의식을 가지거나 위에서 말한 비교, 비난을통한 안도감을 얻어간다. 
아니 안도감만 얻으면 다행이지

일부는 정신력글을 올리며 치며 몇일남았는데 미친듯이 공부해야겠단 말을 쉽게쉽게 내뱉는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날짜가 줄어들면 정신력이 쌔지나?
야마토민족의 정신력 운운하던 일본이 정신력이 부족해서 미국한테 진건가?
물론 성적 올려보려고 마인드세팅하는걸 뭐라 할수는 없다. 그냥 나한테 하는 욕이다.

김연아가 그만의 정신력으로 세계 최고가 된건 그냥 해서..아닐까?
나도 한때 R=VD같은 정신력을 강조하는 책들, 생각들을 자기세뇌시키며
라퐁텐 우화의 우유장수 페레트 처럼 펄쩍펄쩍 뛰어댔을뿐 바뀌는건 없었다.
결국남는건, 그냥하는거지.. 정말 그냥했던것들만 남더라

나는 고1때 수험생이 이런데서 하소연하거나 글올리는 건 참 한심한일이라고 생각했고
독서실 끊어놓고 안오는놈은 정신나간새끼고
고3이되면 정말 책상과 물아일체가 되서 다른말은 들리지도않고 미친듯이 공부만 해야하는건줄 
어느정도 그렇긴하지만, 그런줄로만 알았다.

다른사람을 한심하게 보면안된다는 거는 차치하고,
내 무너진 경계들을 보며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아 물론 내가 그런걸 인터넷 탓을 할수는 없는법이다. 
이건 돈처럼 가치중립적인거니까

혹자는 도움이 된다고 자위하며 개인마다 다름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제목을 저렇게 지었다. 당신은 아니라고 생각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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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은감자 · 505701 · 14/11/06 16:21 · MS 2014

    좋아요..

  • Silver Lining · 525230 · 15/02/04 06:28 · MS 2014

    어쩌다 옛날글 읽게 되었는데 생각도 깊으시고 필력도 좋으시네요.. 뭔가 제가 막연히 느꼈던 느낌들을 구체적으로 문자로 표현해 주셔서 읽으면서 가려운 등 긁는 느낌이었어요! 이런 성찰적이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글 정말 좋아하는데 양질의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