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19 교직일기) (긴글주의) 복직, 그리고 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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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군입대 하기 직전 교직일기를 쓰고 오랜만에 쓰게 되는 일기이다.
우선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금 현 시점의 나는 군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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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임용고시를 합격하고 1년 남짓을 근무하다 올해 3월 20일, 진주 공군교육사령부로 입대하였다.
초등교사로 근무하면서 이런저런 힘든 일들이 많았고, 막판에 교권침해 사태가 있었지만
상대 학부모로부터 보복이 두려워 교권보호위원회에 사안을 올리지 않아 거의 없던 일로 무마되었다.
1년 남짓을 근무하는 동안 여러 환경적 요인, 그리고 과거사 등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고
그 불안정한 상태에서 입대를 강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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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를 할 당시 감기 증상이 있었고 곧바로 2인 격리 생활관에 1주일간 격리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하는 일요일, 대대 건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입대 후 토요일까지는 별 두각을 드러내지 않던 빨모들이 일요일 점심쯤부터 분위기를 확 바꾸고
입영장병들을 본격적인 훈련병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확 바뀌자, 그때부터 심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날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불안감은 심해졌고, 그 주 수요일(3/29) 오후 모종의 사건이 터지면서 억까도 점점 심해져갔다.
저녁먹고 나오는 길에 바른걸음으로 두번이나 조교한테 붙잡혔고, 두번째 붙잡힐 때 과호흡 및 공황발작 증상이 나타났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다음 정기수진이 있는 금요일(3/31)에 교육사령부 내 기지병원에 찾아갔고 곧바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자낙스 및 항우울제를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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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은 병사가 직접 보관하는 게 아니라 당직사관실에 보관했다가 복용해야 할 때마다
찾아가서 먹어야 하는게 규정이라 결국 매일 아침 저녁마다 2대대 당직사관실을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엄격한 소대장들을 만나면 경례가지고 닦이기도 하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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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울제를 먹고 약 1주일 정도가 지났는데 불안이 점점 더 심하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짜증 및 분노도 늘고, 식욕이 줄고, 잠도 주는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수진때 군의관이 왜이렇게 밥을 적게 먹냐(훈련병들의 1/4 수준으로 먹었다)고 묻자, 그냥 입맛이 없어서 적게먹습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소화제를 추가로 처방받았다.
화기학 및 기지방호 학과 시간에는 유독 얼차려를 주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마다 짜증이 폭발했고
어떤날은 총기를 집어던져버리고 그냥 이딴거 안해!! 하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 주말, 허리가 아파 몇몇 동기들과 함께 거의 눕는 자세로 기대고 있었고 그걸 조교한테 걸리자
조교한테 말대꾸하면서 은근 싸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846기 2대대 사람들은 아마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수료를 이틀 앞둔 어느 아침, 모 소대가 아침점호에 늦게 나와 얼차려를 받는 일이 있었다.
그 아침점호에 나는 빨리 나왔지만 우리 소대원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함께 얼차려를 받게 되었고
조교들이 소리치는 것이 계속되자 심한 공포 및 분노가 들면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들어
소리를 지르며 대대 건물 안으로 도망쳐 들어갔다.
나의 돌발행동으로 얼차려는 종료되었고 그냥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하루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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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훈련단은 사격, 종합이론평가, 실습평가 등으로 점수를 매겨 등수를 부여하는 구조이다.
846기 수료생이 총 2391명이었고 나는 그중에서 237x등으로 수료하였다.
내 뒤에는 20명도 채 있지 않았다.
사격평가 당시 공황증세가 나타났고, 앞이 안보여 안보고 쏘는 바람에 한발도 못맞췄다.
그리고나서 실습평가, 이론평가까지 의욕이 생기지 않아 점수 받기를 포기했고 결국 성적은 저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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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는 나름 원하던 특기를 운좋게 막차로 받았다.
그리고 특기학교 생활은 별 사건 없이 무난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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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대는 집 근처 원하던 자대로 배속받았다.
성적이 낮았음에도 내가 가려던 자대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나는 그 부대에 갈 수 있었다.
자대배치 직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내가 정신과 약을 훈련소부터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관심병사로 지정되었고 이런저런 특별 관리가 뒤따르며 매일 당직사관실을 드나들며 약을 복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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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병도 달고 슬슬 적응하나 싶더니 몇가지 심리검사에서 심각한 문제가 보고되었다.
당시 나는 부모님에게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담당 주임원사님께서는 알리는 게 원칙이라면서 계속 알리려고 하셨고 결국 나는 내가 직접 알릴테니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하였다. 알리는 것이 무서웠던 게 부모님은 나를 항상 어릴 적부터 강하게 키우려고 하셨고, 위로보다 훈계 위주의 대화를 듣고 살았는데 이걸 알리게 되면 또 내가 약해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았다.
이걸 알리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이 됐던지 알리기 전날 꿈에서 작년 악성민원 학부모가 꿈에 나와 내가 약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꿈까지 꾸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는 슬슬 쌓여갔고, 나는 왜 힘든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점점 힘들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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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이유를 지금와서 돌이켜보자면 긴 근무시간이 하나의 원인이었을 수 있을 것 같다.
보직 특성 상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로 17시 30분까지 근무한다.
그런데 초과근무로 받게 되는 가점은 고작 0.5점, 50일을 조기출근해야 포상휴가 하루를 받는 구조였다.
체력적으로 힘든게 점점 누적되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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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규율이나 군대 시스템 또한 나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무기력한 상황에서 뭐든지 보고해야되고, 약먹는 것도 매번 당직사관을 대면해야 했다.
결국 이러한 상황들이 쌓여 6월초쯤 액팅아웃이 한번 있었고 며칠간의 고민 끝에 현부심 받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 현부심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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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반에 첫 휴가를 나가게 되었고 담당 주임원사님은 나에게 자꾸 입원을 권유하셨다.
그런데 나는 폐쇄병동에 입원하는 것이 너무 무서웠고 입원을 고민하고 있던 중, 부모님께서도 입원을 반대하셔 결국 입원하지 않기로 하고 꾸역꾸역 부대생활을 이어나갔다.
상담을 받을 때 자해나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주임원사님께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라 최대한 머리굴려 가면서 힘든점을 이야기하되 주임원사님께 보고될 만한 사안이 아니도록 이야기를 했고, 주임원사님과의 면담에서도 입원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그냥 적당히 힘들다고만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자살충동이 들고 죽음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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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후반, 보직이동이 한차례 있고 다른 보직으로 가게되었다.
거기서 조금씩 나아지나 싶었지만 여전히 죽음에 대한 생각, 반추 등의 증상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이 보직이동 직후 몇주가 그나마 버티기 가장 수월했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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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현부심 할때까지만이라도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고 실제로도 어느정도 시간이 괜찮게 가는 듯 했다. 하지만 7월 19일, 모두가 알고있는 그 사건이 터지게 되고 그 시점에서 나의 감정 또한 급격하게 다운되며 이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정도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사건만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부대 내 분위기도 딱 그날부터 대단히 압박적으로 변해갔고, 사소한 일에도 감점과 군기카드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두번째 휴가를 다녀오게 되었고 그 휴가 이후로 8월 한달 간 지옥을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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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입원하라는 주임원사, 압박적인 비행단 분위기, 교권에 대한 사회적 이슈 등으로 8월은 극도로 힘들었다.
그러한 와중에 8월 중후반에 UFS훈련이 있었고 당시 여러 훈련들을 부대 내에서 다른 부대들은 하지도 않는 걸 추가로 시켰다. 그런 훈련을 할 때마다 훈련단 당시의 트라우마가 올라왔고 부대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었다.
매일같이 자살충동이 드는 것은 기본이고, 폰 받아서 검색하는 것이 극단적 선택을 어떻게 실행에 옮길지 그런 것들을 검색했다. 그리고 9월 들어서는 그것을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우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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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8월에 군의관님이 현부심을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하셔 급수재판정을 해주셨고 9월 중순 현부심 1차를 넣게되었다. 이 당시에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고 결국 든 생각은 그 세워둔 계획을 떨어지는 즉시 실행에 옮기자고 다짐하였다.
9월 20일, 다행히도 1차 심사가 통과하였고 그것을 실행에 옮길 일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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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에 2차 공군본부 심사가 있었고 그동안 부대에서 지내다가 마지막 2주동안은 교육사 병심대로 이동했다.
거기서 폐쇄병동 순한 맛을 살짝 경험하면서 지냈고 상담관님 및 군의관님과 각각 면담을 한차례씩 진행했다.
그전에 입소 직후 심리검사를 하였는데 심리검사 결과를 가지고 상담관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인은 본인이 여자 같은 거 알고 있나요?" 이 질문을 듣고 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라고 답하였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남자 애들처럼 축구하고 놀고 우루루 몰려다니며 신체적으로 놀기보다 가만히 앉아서 노는게 좋고, 인형가지고 노는 것을 즐기곤 했다. 그 외에도 평소에도 섬세하고 꼼꼼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곤 했다.
또한 스스로도 성격이 되게 여리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해당 사실을 곧바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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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부모님의 태도는 달랐다.
나를 항상 남자답게, 강하게 키우고자 하셨고, 커서 군대도 가야하고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힘든 일이 생길때마다 부모님과 얘기하면 위로나 공감 보다는 쓴소리를 더 많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쭈그러들었다.
학교에서도 여리고 우울해보이는 나였기에 항상 누군가에게 만만하게 보였고 괴롭힘의 타겟이 되었다.
그러면서 성격도 점점 안좋아졌고, 죽음 및 자살에 대한 생각을 초6때부터 하게 되었다.
초6때 체육시간에 선생님께서 자율체육을 주시면 남학생들은 사실상 반강제로 축구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운동신경도 약하고 축구를 못해서 항상 애들한테 꼽먹는 일이 많았고 그러다가 체육시간만 되면
당시 초임이시던 선생님 앞에서 울면서 힘든 점들을 얘기하곤 했다.
그 와중에 중학교는 남자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 학교 분위기 + 초등학교부터 계속되는 괴롭힘 + 학원에서도 찐따라는 것이 소문나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그 시도를 하는 등 매우 어두운 시기를 보냈다.
고등학교는 다른 시도로 가게 되었고, 결국 그쪽에서도 적응 문제로 인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어릴 때부터 우울증이 매우 심한 상태였고 힘든 교직생활로 극도로 안좋은 상태에서 입대했다가 결국 못버티고 현부심 절차를 밟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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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관님 면담 할 때 나의 심리검사지, 자기성장사 등을 보시고는
약만 먹었으면 군대 안와도 됐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말을 듣고 며칠동안 나는 도대체 뭘 위해서 어릴때부터 강하게 키운답시고 저런 대접을 받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 그렇게 불안했으면 심리검사 한두번이라도 시켜봤어야지... 왜 자꾸 강하게 키운답시고 그렇게 내모셨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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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는 10월 말 다시 교사로 복직을 하게 되었고 현재 병가 상태이다.
솔직히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군대에서 우울에 시달리며 알면 안 될 것을 알아버린 느낌이기도 하고, 이전처럼 힘든 일이 생길 때 그저 끙끙 앓으며 버티기보단 실행에 정말로 언제든 옮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자꾸 든다.
보통 담임 선생님이 젊은 남자면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대드는 일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어릴때부터 내재된 나의 약한 모습 때문에 아이들이 자꾸 대들고 말 안듣고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작년에 아이들이 졸업 앞두고 그렇게 기어 오르는데 고함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오히려 웃음거리가 되어
교실붕괴가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면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 무섭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최근 이슈로 교권이 조금은 회복될 희망은 있으니 너무 절망만 하지 않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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