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u Roman. [69422] · MS 2004 · 쪽지

2017-03-09 01:5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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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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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파와 종편, 전국단위 신문사가 내거는 기사는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교양있는 시민이라고 떠벌릴 수 있을 것 같다. "난 조중동도 읽지만 경향과 시사인도 읽는다"는 수사는 별 거 아닌데 꽤 매력적이다. 


  이런 필터를 거치고도 의제로 남아있지 않다면 그 의제는 가치가 없거나 미약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내겐 내란선동혐의로 구속된 이석기 전 의원이 이런 경우였다. 애국가도 안 부르고 북괴를 '북한'이라고조차 부르지도 못하는 놈들이라 못 마땅했는데 내란을 꾀했다니 당연하다 싶었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결정이었지만 별개로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는 이들에게 동정심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내게 이 사건을 다시 보게끔 전기를 마련해준 것은 존경하는 어느 작가의 한마디였다. 그는 내게 "'이석기가 왜 거기 있어야 하는데? 이석기가 감옥에 있는 이유가 대체 뭐냐?"고 친구들에게 묻고 다닌다면서 "이석기를 석방하라!가 구호가 되지 못하는 광화문 촛불시위는 포르노 극장"이라 했다. 판결문을 읽고 이카로스의 감옥(문영심)을 집어든 것은 그래서이다.


  책에 따르면, "선전 수행"은 “성전(聖戰) 수행”으로 날조되었고 “시 단위에 있어도 연락을 할 수 없는 상황”은 “실탄이 있어도 연락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날조되었다. 총으로 무장해 무기고를 털겠다는 계획으로 알려진 이석기가 강연 마무리 발언에서 한 말은 이렇다.


  “총? 총 가지고 다니지 마십시오. 핵폭탄보다도 중요한 게 사상의 무기입니다.” 


  사실 난 이 사안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대법원, 헌법재판소가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도 알지 못했다. 종북은 그 자체로 망상인데 대법원이 유죄판결했다면, 그게 대체로 맞겠지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다. 게다가 이 사안은 혹여나 저쪽편을 잘못 들었다가 종북 프레임에 걸려 빠져나올 수도 없다. 


  그래서 이 책을 늦게나마 읽게 된 것은 내겐 다행스런 일이다. 관심이 없더라도 이석기가 내란을 선동했다는 그 녹취록을 책에 게재된 부분만이라도 읽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녹취록의 거개는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자주와 통일을 이룩하자는 부분에 할애되어 있다. 일국의 국회의원이 한 발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하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솔직한 견해이지만 왜 이것이 '내란선동'이라는 거악에 해당하여 9년 징역을 살게 해야하는지는 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법원 판결에 따르면 1. RO는 없었다. 2. 사전준비행위도 없었다. 3. 전쟁이 당장 임박한 시기도 아니었으며 4. 제안과 수락이라는 합의도 없었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석기의 '말'만으로도 회합 참석자들이 영향을 받아 폭동을 일으키는 등 위험이 인정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런 무시무시한 내란선동 현장에서 참석자 중 어떤 이는 졸았고 어떤 이는 아기를 업고 나왔다는 사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검찰과 국정원은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는 RO를 일망타진할 기세를 보이면서도 강연회 참석자 130명 중 120명 넘는 인원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그마저도 내란 선동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는 이석기와 행사의 사회자 둘 뿐이다.(사회자는 5분 사회로 5년 징역을 살게 됐다.) 


  무릇 글이라 함은 철저하게 주제에 관하여 취재하고, 사색한 뒤 검증을 거쳐 확신을 갖고 써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문장에 힘을 주고 획 하나에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나는 이번 글을 쓰면서 그 정도의 검증과 확신에 이르지는 못하였음을 고백해 둔다. (사실 그럴만한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나는 전술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석기가 생각대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국정원발 소스를 최소한의 검증과정 없이 돌려치기한 언론과 몇몇 수사를 마음대로 곡해하여 내란선동을 선고하는 법원이 생각보다 이상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온갖 위법수집증거 문제와 여론재판 문제가 횡행한 가운데 그 어느 누구도 여기에 쉽게 문제를 제기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 책에 관하여 서평이라고는 내가 존경하는 작가 달랑 한 명만이 쓴 이유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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